2025-09-10

목차

염증의 정체와 면역시스템의 구조

우리 몸 안에서 벌어지는 전쟁 염증의 본질

현재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의 몸속에서는 염증이 발생하고 있다. 염증이란 단순히 피부에 나는 종기나 상처가 덧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몸 내부 곳곳에서 항상 벌어지고 있는 방어 반응의 결과물이다.

사전적으로 염증은 “생체 조직이 손상을 입었을 때 체내에서 일어나는 방어적 반응”으로 정의된다. 외상이나 화상, 세균 침입에 대하여 몸의 일부에서 충혈, 부종, 발열, 통증을 일으키는 증상이다. 그런데 한자로 쓰인 염증(炎症)과 영어 ‘inflammation’은 모두 **‘불이 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어에서 ‘inflame’은 ‘내부에 불이 난다’는 뜻으로, 실제로 염증이 일어날 때 느끼는 열감과 통증을 정확히 표현한다.

하지만 이 ‘불’은 우리 몸을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 켜지는 신호등이다. 염증은 면역시스템의 첫 번째 단계에서 시작되는 현상으로, 우리 몸이 외부 침입자와 벌이는 전쟁터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소란이다.

선천면역과 후천면역의 역할 분담

면역시스템을 이해하려면 먼저 두 가지 서로 다른 부대의 작전 방식을 알아야 한다. **선천면역(Innate Immunity)**과 **후천면역(Adaptive Immunity)**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면역’은 후천면역의 일부에 불과하다. 한 번 감기에 걸린 후 같은 바이러스에 다시 걸리지 않는 것, 예방접종을 통해 특정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갖는 것이 바로 후천면역이다. 이는 기억에 기반한 정밀한 타격 시스템이다.

반면 선천면역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관상을 보고” 적을 판별한다. 처음 보는 침입자라도 “이놈은 나쁜 놈이야”라고 직감적으로 판단하여 즉시 공격을 시작한다. 정확성보다는 신속성과 파괴력에 중점을 둔 시스템이다.

“선천면역은 무장공비가 넘어왔을 때 우리 군대가 대응하는 것과 똑같다. 일단 저 집에 숨어 있어도 가리지 않고 폭격한다.”

대식세포와 중성구의 최전선 전투

선천면역의 주인공은 **대식세포(Macrophage)**다. ‘마크로파지’라는 이름 그대로 **‘대단하게 먹는 세포’**라는 뜻이다. 이들은 우리 몸의 모든 조직에 상주하고 있다. 뇌에서는 미크로글리아, 간에서는 쿠퍼세포, 피부에서는 랑게르한스세포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모두 대식세포의 변형이다.

대식세포는 평상시에는 마치 예쁜 아가씨 같은 모습으로 조용히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병균이 침입하면 삼지창을 휘두르는 전사로 돌변한다. 이들은 수년에서 수십 년의 긴 수명을 가지며, 각자의 영역에서 파수꾼 역할을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대식세포는 혈액 속의 **중성구(Neutrophil)**를 긴급 소집한다. 중성구는 혈관벽을 뚫고 나와 전투 지역으로 달려온다. 이 과정에서 혈관에서 물이 빠져나와 부종이 생기고, 중성구들이 대거 몰려들어 염증이 시작된다.

중성구의 전투 방식은 매우 격렬하다. 병균만 선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조직까지 함께 파괴한다. 그 결과 생기는 것이 바로 고름이다. 고름의 대부분은 병균이 아니라 우리 편 중성구의 시체다. 이들은 짧은 수명을 가지고 있어서 전투 후 대부분 죽어버린다.

염증약의 작동원리와 한계

우리가 흔히 먹는 소염진통제는 어떻게 작동할까?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은 주로 해열과 진통 효과만 있고 항염 효과는 제한적이다. 반면 NSAIDs(아스피린, 이부프로펜 등)는 중성구의 활동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염증을 줄인다.

하지만 이는 아군의 도시락을 빼앗는 것과 같다. 염증이 일어나는 이유는 몸을 지키기 위해서인데, 그 방어 활동을 억제하면 당연히 감기가 더 오래 갈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 몸은 염증을 통해 **“지금은 쉬어라”**는 신호를 보내는데, 소염제를 먹고 활동하면 몸의 에너지가 분산되어 회복이 지연된다.

“감기는 약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7일”

이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면역학적으로 타당한 설명이다. 물론 정확한 표적 치료제(항생제, 항바이러스제)가 있다면 사용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몸의 자연스러운 방어 메커니즘을 존중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후천면역 시스템의 정교한 메커니즘

항체의 탄생과 기억 시스템

선천면역이 무차별 폭격이라면, 후천면역은 정밀 스나이퍼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수지상세포(Dendritic Cell)**가 수집한 정보에 있다. 수지상세포는 대식세포의 한 종류로, 전투원이 아닌 정보 수집원 역할을 한다.

침입한 병균의 일부를 채취하여 **“침입자의 특징이 이거다”**라는 정보를 림프구에게 전달한다. 이 정보를 받은 B세포는 해당 침입자만을 표적으로 하는 맞춤형 항체를 생산한다. 동시에 **기억세포(Memory Cell)**를 만들어 이 정보를 장기간 저장한다.

이 과정은 며칠에서 몇 주가 걸린다. 첫 번째 침입 때는 선천면역이 버티는 동안 후천면역이 준비를 완료한다. 하지만 두 번째 침입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기억세포가 즉시 반응하여 항체를 대량 생산하고, 침입자를 조용히 제거한다.

1796년 영국의 제너(Jenner)가 개발한 종두법이 바로 이 원리를 최초로 활용한 사례다. 소의 우두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접종하여 천연두에 대한 면역을 만들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위험한 실험이었지만, 결국 천연두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종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자가면역질환의 발생 메커니즘

하지만 이 정교한 시스템에도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항체를 만들 때 침입자의 모든 특징을 기억할 수는 없으므로, 효율성을 위해 일부 특징만 선택한다. 문제는 그 특징이 우리 몸의 정상 조직과 유사할 때 발생한다.

“안경 쓴 놈이 침입자다”라는 잘못된 정보를 기록하면, 이후 안경 쓴 모든 사람을 적으로 인식한다.

이것이 바로 자가면역질환의 메커니즘이다. 류마티스 관절염, 루푸스, 베체트병 등이 모두 이런 방식으로 발생한다.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만들어진 항체가 우리 몸의 혈관벽이나 관절을 공격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자가면역질환이 생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는 각자의 면역시스템이 서로 다른 특징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핵심적인 특징을 잡아 효과적인 항체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무의미한 특징을 잡아 쓸모없는 항체를 만들기도 한다.

현대 생물학적 치료제의 혁명

2000년대부터 생물학적 제제라는 새로운 약물군이 등장했다. 기존의 화학적으로 합성된 저분자 화합물(분자량 1000달톤 이하)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이 바로 항체 치료제였다.

가장 유명한 성공사례는 애브비(AbbVie)의 **휴미라(아달리무맙)**다. 이 약물은 연간 매출 10-20조원을 기록하며 제약업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약물 중 하나가 되었다.

휴미라의 원리는 혁신적이었다. 병균이 아닌 우리 몸의 염증 물질인 TNF-α(종양괴사인자 알파)를 표적으로 하는 항체를 만든 것이다. TNF-α는 대식세포가 분비하는 사이토카인으로, 중성구를 부르고 염증을 확산시키는 신호 전달 물질이다.

자가면역질환 환자들은 이 TNF-α가 과도하게 분비되어 자신의 몸을 공격한다. 휴미라는 TNF-α를 중화시켜 이런 과도한 면역 반응을 억제한다. 류마티스 관절염, 건선, 염증성 장질환 등 다양한 자가면역질환에 놀라운 효과를 보였다.

FC 수용체의 발견과 응용

항체가 오랫동안 혈액에 머무를 수 있는 이유는 FC 수용체(FcRn, Neonatal Fc Receptor) 때문이다. 혈관벽 세포는 이 수용체를 통해 항체를 인식하고, 마치 “아, 형님 오셨습니까” 하는 식으로 특별 대우를 한다.

다른 단백질들은 혈관벽 세포에 의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지만, FC 부분을 가진 항체는 다시 혈액으로 방출된다. 이 메커니즘 덕분에 항체는 한 번 만들어지면 몇 개월에서 몇 년간 지속된다.

이 원리를 응용한 것이 바로 FC 융합 단백질이다. 치료 효과가 있는 단백질에 항체의 FC 부분을 붙이면, 그 단백질도 항체처럼 오래 지속된다. 당뇨병 치료제로 주목받는 GLP-1 작용제들도 이런 기술을 활용해 주 1회 투여가 가능하다.

노보노디스크의 트루리시티(둘라글루타이드)가 대표적인 예다. GLP-1 호르몬은 원래 하루밖에 지속되지 않지만, FC를 붙이면 일주일간 효과가 지속된다. 환자들은 매일 주사하는 대신 일주일에 한 번만 맞으면 된다.

선천면역의 강력함과 그 부작용

염증반응의 에너지 소모와 진화적 의미

염증이 일어나면 우리 몸은 전시 체제로 전환된다. 열을 내고, 식욕을 떨어뜨리고,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이 모든 증상이 바이러스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면역세포가 만드는 것이다.

우리 몸의 에너지 사용 우선순위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가만히 있어도 60%의 에너지가 기초대사(주로 체온 유지)에 사용되고, **25%**가 신체 활동에 쓰인다. 면역 활동은 가장 마지막 순위다.

감염이 발생하면 신체 활동 에너지를 면역으로 전용해야 한다. 그래서 몸은 “움직이지 말고 쉬어라”는 신호를 보낸다. 발열로 최적의 면역 활동 온도(38도)를 만들고, 피로감으로 활동을 제한한다.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감기에 더 자주 걸리고 오래 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면역에 쓸 에너지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적당한 체지방을 가진 사람들은 에너지 저장고가 있어 감염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뇌출혈에서 벌어지는 면역시스템의 오작동

선천면역의 치명적인 한계는 지주막하 출혈 같은 상황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뇌혈관이 터져서 혈액이 뇌조직으로 흘러들면, 뇌의 대식세포들은 혈액을 외부 침입자로 인식한다.

뇌는 평소 혈관 안의 혈액만 보았지, 조직에 직접 접촉하는 혈액은 본 적이 없다. 특히 적혈구는 완전히 낯선 존재다. 대식세포는 이를 병균으로 판단하고 전면전을 선포한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뇌 전체에 걸쳐 대규모 염증이 발생한다. 비장의 예비 면역세포들이 총동원되고, 전신의 면역세포들이 뇌로 몰려든다. 간의 쿠퍼세포들은 IL-6 같은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대량 분비한다.

“환자는 자신의 몸이 자신을 공격해서 위험해진다.”

지주막하 출혈 환자가 응급수술로 출혈을 멈춘 후에도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가 파괴적인 면역 반응을 견뎌내야만 생존할 수 있다. 뇌경색처럼 혈관을 뚫어주면 극적으로 좋아지는 질환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활성산소의 이중성과 치료제 개발

염증 반응의 핵심에는 **활성산소(ROS, Reactive Oxygen Species)**가 있다. 대식세포와 중성구가 활동할 때는 마치 요리할 때 가스불을 켜는 것과 같다. 산소를 더욱 반응성 높게 만들어 각종 신호 전달 물질을 생산한다.

평상시에는 이 ‘가스불’이 적절히 조절되어 필요한 사이토카인(IL-1, IL-6, TNF-α)을 만든다. 하지만 심각한 감염이나 조직 손상 상황에서는 가스불을 크게 켜야 하고, 이때 활성산소가 과도하게 생성된다.

문제는 활성산소가 커튼에 옮겨붙는 불처럼 주변으로 확산된다는 것이다. 정상 조직까지 손상시키며 염증을 악화시킨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 우리 몸은 글루타치온 과산화효소, 카탈라아제 같은 항산화 효소 시스템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내재적 방어 시스템은 작은 가스불을 끄는 정도의 능력밖에 없다. 지주막하 출혈처럼 대화재가 발생한 상황에서는 무력하다. 비타민 C, 비타민 E 같은 항산화제도 마찬가지로 효과가 제한적이다.

산화세륨 나노입자의 혁신적 접근

기존의 화학적 항산화제와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 바로 산화세륨(Cerium Oxide) 나노입자다. 세륨은 원자번호 58번 원소로, 희토류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매우 흔하고 저렴한 물질이다.

공업에서는 산화환원 반응의 촉매제로 널리 사용된다. 산화세륨의 독특한 성질은 Ce³⁺와 Ce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전자를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주변의 산화환원 상태를 조절한다.

일반적인 약물은 화학 반응을 통해 한 번 작용하고 나면 대사산물로 변한다. 하지만 산화세륨은 촉매 역할만 하므로 자신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지속적으로 활성산소를 제거한다. 마치 네버엔딩 배터리와 같다.

나노기술의 발달로 산화세륨을 10nm 이하의 극미세 입자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생체적합성 고분자로 코팅하면 안전하게 주사할 수 있는 치료제가 된다. 대식세포와 중성구가 이를 흡수하면, 세포 내에서 활성산소 생성을 강력히 억제한다.

현재 이 기술을 바탕으로 한 신약이 임상 1상을 시작했다. 뇌출혈, 척수손상, 심근경색, 중증 폐렴 등 급성 염증성 질환에 응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기존에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많은 응급 상황에서 적극적인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염증이라는 현상을 통해 우리는 생명의 정교함과 한계를 동시에 볼 수 있다. 우리를 지키기 위한 시스템이 때로는 우리를 해치기도 한다는 역설. 하지만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더 나은 치료법을 만들 수 있다. 면역학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의 의학이 기대되는 이유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