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0

목차

금장에서 시작된 은행의 원죄

찰스 1세의 징발 사건과 새로운 보관소의 등장

1640년, 런던 탑에 위치한 왕립 주화소에서 한 사건이 일어났다. 찰스 1세가 의회와의 갈등 속에서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귀족들과 상인들이 맡겨둔 금을 강제로 징발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갈등을 넘어선, 금융사에 결정적 전환점을 만든 사건이었다.

왕립 주화소는 그때까지 런던에서 가장 안전한 보관소 역할을 해왔다. 튼튼한 성벽과 군대의 경비, 그리고 왕실의 권위가 보장하는 절대적 신뢰. 부유층들은 이곳에 자신들의 귀금속을 맡기며 안심했다. 하지만 찰스 1세의 징발은 이 모든 신뢰를 한 순간에 무너뜨렸다.

“왕이라 해서 내 재산을 마음대로 가져갈 수는 없는 일이다.”

분노한 예금자들의 목소리가 런던 전역을 뒤덮었다. 비록 나중에 갚기는 했지만, 이미 신뢰는 깨어졌고 사람들은 새로운 보관처를 찾아 나섰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런던의 금장들이었다.

금장들은 13세기부터 길드를 형성해 귀금속 가공과 거래를 독점해왔다. 왕실로부터 모든 금화와 은화의 품질을 검증하는 시금 독점권까지 받은 이들은 귀금속의 진위를 판별하는 최고의 전문가였다. 왕립 주화소를 대체할 보관소로는 이보다 더 적합한 곳이 없었다.

가짜 보관증 발행으로 시작된 대출의 역사

금장들은 처음에는 순수한 보관업만 했다. 금과 은을 맡기면 보관증을 써주고, 요구하면 돌려주는 단순한 업무였다. 그런데 이 보관증이 화폐처럼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무거운 금을 직접 가져다닐 필요가 없지 않나? 보관증만 주고받으면 되잖아.”

상인들 사이에서 보관증 거래가 활발해지자, 금장들에게 새로운 유혹이 찾아왔다. 단골 고객이 찾아와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다.

“곧 금이 들어올 예정이니, 일단 보관증을 먼저 써주면 안 될까요?”

처음에는 거절했다. 들키면 큰일 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거래 패턴을 살펴보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실제로 금이 유출되는 빈도는 유입된 금의 10%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보관증만 주고받을 뿐, 실제 금을 찾아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받은 금에 10배 정도 보관증을 발행해도 확률적으로 문제가 없지 않을까?”

이때부터 금장들의 타락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한두 장씩 조심스럽게 써주던 가짜 보관증이 점차 늘어났다. 대출 이자라는 달콤한 수익이 그들의 간담을 키워갔다. 한 장 써주면 나중에 두 장 받기로 하는 약속.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신용 대출이었다.

10%의 진실과 90%의 허상이 만들어낸 시스템

금장들의 장부를 분석한 역사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 보관된 금은 전체 발행된 보관증의 10%에서 33% 사이에 불과했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도 당시 금장들이 33% 정도만 실제 금을 보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현대 은행의 부분준비제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90%는 허공에서 만들어낸 것이고, 10%만이 실제 자산이라는 무서운 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스템은 작동했고, 경제는 일시적으로 활성화됐다.

상인들은 이제 몇 달 뒤 들어올 수익을 기다리지 않고도 즉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재고를 미리 확보하고, 새로운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단기간의 진성 어음주, 즉 실제 상거래와 직접 관련된 대출은 분명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욕심은 끝이 없었다. “상거래가 아닌 부동산이나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에게도 돈을 빌려주면 더 많은 이자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금장들의 시야가 투기로 향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부분준비제도라는 이름의 구조적 모순

현대 은행 시스템을 이해하려면 이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은행 예금의 본질적 모순을 보자. 모든 부채는 세 가지 특성을 갖는다. 확정 금액을 갚아야 하고, 이자가 있으며, 반드시 만기가 있다.

그런데 은행 예금은 부채라고 하면서도 만기가 없다. 요구불 예금은 당연하고, 정기 예금조차도 언제든 해지하고 원금을 찾을 수 있다. 세상에 이런 부채가 어디 있겠는가?

“예금”이라는 말 자체가 Deposit, 즉 “아래에 둔다”는 뜻이다. 보관이라는 의미다. 저축이 아니라 보관이기 때문에 언제든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은행은 이 보관물을 대출로 내보내고 있다.

러시앤캐시나 대부업체에 돈을 빌려준 사람이 중간에 “내 돈 당장 내놔”라고 하면 거절당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부채다. 하지만 은행에 예금한 사람이 같은 요구를 하면 은행은 반드시 응해야 한다. 이것이 은행 시스템의 근본적 모순이다.

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유동성 위험을 극대화한다. 언제든 찾을 수 있는 부채로 장기 대출을 해주는 만기 불일치. 은행이 본질적으로 깨지기 쉬운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유자원의 비극이 된 은행 대출

배제성 없는 대출이 만든 치명적 경쟁구조

1968년 생태학자 하딘이 제시한 “공유자원의 비극” 이론이 은행 대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공해상 어업이나 공동 목초지처럼, 은행 대출도 배제성은 없고 경합성만 있는 자원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은 대출을 할 때 저축의 유입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대출 자체가 예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내가 5억 원 대출을 받으면, 은행 입장에서는 “5억 원 대출해줬고, 5억 원 예금받았다”가 된다. 대출을 아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출을 해줄 수 있는 우량 차입자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은행 예금은 언제든 인출할 수 있기 때문에 신용도가 높은 고객에게만 대출해야 안전하다. 그런데 모든 은행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먼저 좋은 고객을 선점하는 은행이 승리한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에 다른 은행이 우량 고객들을 다 가져가면 어떻게 하지?”

모든 은행이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한다. 마치 공해상에서 고기를 잡는 어선들처럼, 서로 먼저 가져가려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 것이다.

우량 차입자 선점 경쟁과 필연적 타락

우량 차입자들은 빠른 속도로 고갈된다. 애초에 그 수가 제한되어 있는데 모든 은행이 동시에 달려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불량 차입자들뿐이다.

처음에는 “이런 고객에게는 대출해주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은행들이 예금 금리를 낮추고 대출 기준을 완화하기 시작한다.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따라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이자라도 제대로 내네? 그럼 괜찮은 것 아닌가?”

허들을 조금씩 낮춰가며 대출 영역을 확장한다. 상거래용 대출에서 시작해 부동산 투기자금으로, 주식 투자자금으로 점점 영역을 넓혀간다. 담보만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심사 기준은 계속 느슨해진다.

시뇨리지, 즉 예대마진의 유혹은 강력하다. 예금에 주는 이자보다 대출에서 받는 이자가 훨씬 크니까, 대출량을 늘릴수록 수익이 늘어난다. 통화 창출권을 가진 은행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지만 이는 마치 맥도날드에서 여럿이 함께 시킨 음식 중 자기 것은 안 먹고 남의 감자튀김만 먼저 먹어치우는 행위와 같다. 모든 은행이 같은 행동을 하면 결국 모두가 망한다.

케인즈가 말한 건전한 은행가의 역설

케인즈는 이런 말을 했다.

“건전한 은행가는 위험을 예견해서 피하는 은행가가 아니고, 동료들과 함께 똑같은 방식으로 그 대출에 뛰어드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섬뜩하다. 망해도 다 같이 망하면 누구도 자기를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혼자 조심스럽게 굴다가 다른 은행들이 호황을 누리는 동안 뒤처지면, 그때는 경영진이 주주와 예금자들에게 질책받는다.

“다른 은행들은 다 돈을 벌고 있는데 왜 우리 은행만 이렇게 보수적이냐?”

반대로 모든 은행이 함께 위험한 대출에 뛰어들어 집단적으로 위기를 맞으면, 그것은 개별 은행의 잘못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가 된다. 구조적으로 무책임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펀드 매니저들이 모두 삼성전자를 사는 이유와 같다. 삼성전자가 떨어져도 다른 펀드들도 함께 손실을 보면 상대적으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혼자 삼성전자를 안 샀다가 삼성전자가 오르면 투자자들의 질책을 받는다.

집단적 파산으로 향하는 숙명적 경로

이런 경쟁의 결과는 예측 가능하다. GDP보다 훨씬 많은 대출이 시장에 풀리면서 생산물의 수급 불균형이 발생한다. 돈은 많은데 실제 생산물은 제한되어 있으니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진행된다.

처음에는 우량 차입자들의 사업이 잘 되는 것 같았지만, 투입 비용이 급상승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된다. 불량 차입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우량 차입자와 불량 차입자 할 것 없이 모두 연체하기 시작한다.

은행들의 손실이 표면화되기 시작하면, 예금자들은 불안해한다. “내 돈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예금자들은 어느 은행이 건전하고 어느 은행이 위험한지 구별할 수 없다. 모든 은행이 비슷비슷하게 위험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뱅크런이 시작되고, 모든 은행이 동시에 파산 위기에 몰린다. 일반 기업들은 대부분 개별적으로 망하지만, 은행들은 거의 항상 집단적으로 망한다.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위험을 지고, 같은 시기에 위기를 맞기 때문이다.

끝까지 우량 차입자에게만 대출해준 신중한 은행이 있었다 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예금자들이 구별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은행 역시 뱅크런의 대상이 된다. 결국 모든 은행이 이 게임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자산 시장과 함께 춤추는 부채의 폭주

담보 가치 상승이 만든 무한 대출의 고리

신용 팽창이 실물 경제에 국한될 때는 그나마 한계가 있다. 실제 생산물이 부족해지면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진행되고, 사업의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산 시장이 개입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부동산이나 주식을 담보로 대출해주기 시작하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대출이 늘어날수록 자산 가격이 오르고, 자산 가격이 오를수록 담보 가치가 높아져서 더 많은 대출을 해줄 수 있게 된다.

“어? 이 아파트 가격이 벌써 10% 올랐네? 그럼 담보 여력이 더 생겼으니 추가 대출해드릴 수 있습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꿈같은 상황이다. 담보 가치가 계속 오르니 대출 위험은 줄어드는 것 같고, 대출량은 계속 늘려도 안전해 보인다. 차주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산 가격이 오르면 자신의 순자산이 늘어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것은 완벽한 착각이다. 어제까지 살던 집이고, 지금도 살고 있는 집이며, 내일도 살 집인데, 그 집값이 오른다고 해서 실제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 전체적으로는 자산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만 커질 뿐이다.

남해 버블부터 대공황까지 반복되는 패턴

역사는 이런 패턴을 끊임없이 반복해왔다. 18세기 초 영국의 남해 버블,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 19세기 영국의 철도 버블, 20세기 초 미국의 주가 버블로 이어진 대공황까지. 모든 금융 위기의 배후에는 자산 시장 버블이 있었다.

남해 버블 당시 영국인들은 남미 무역의 장밋빛 전망에 도취되어 남해 회사 주식에 미쳐갔다.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주식 담보 대출을 늘렸고,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하지만 결국 거품이 터지면서 수많은 은행들이 동시에 파산했다.

미시시피 버블도 마찬가지였다. 존 로가 설립한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을 담보로 한 대출이 폭증하면서 프랑스 경제 전체가 투기 광풍에 휩쓸렸다. 하지만 결국 버블이 붕괴하면서 프랑스 금융 시스템이 마비됐다.

패턴은 항상 같았다. 처음에는 실물 투자에서 시작하지만, 점차 자산 투기로 확산된다. 은행들은 담보 가치 상승에 취해 대출을 무분별하게 늘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거품이 터지면서 모든 것이 무너진다.

실물 경제를 넘어선 부채의 끝없는 확장

순수 중개 기관과 부분준비 은행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러시앤캐시 같은 대부업체는 저축이 먼저 들어와야 대출해줄 수 있다. 저축은 GDP의 일부이므로, 순수 중개 기관의 대출은 절대 GDP를 초과할 수 없다.

오히려 신용도를 고려하면 GDP보다 적은 대출만 가능하다. “이 사람에게 빌려줬다가 돈 떼이면 어쩌지?” 하는 우려 때문에 아이들 머니(idle money)가 생긴다. 그러면 수익률을 낮춰서 저축 유입을 줄이거나, 다른 투자처를 찾게 된다.

순수 중개 기관에서는 대출이 실물 경제와 완벽하게 연동된다. 저축이 독립변수이고 대출이 종속변수다. 경제가 성장해야 저축이 늘고, 저축이 늘어야 대출이 늘어난다.

하지만 부분준비 은행은 정반대다. 대출이 독립변수이고 저축(예금)이 종속변수다. 대출을 통해 예금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GDP와 상관없이 대출을 늘릴 수 있다. 이것이 실물 경제와 부채 규모가 점점 괴리되는 근본 원인이다.

GDP와 민간 대출의 40년간 벌어진 격차

1960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 연준 데이터를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GDP 대비 민간 대출 비율이 100 아래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급격히 상승해서 지금은 300에 육박한다.

경제 성장률은 거의 비슷한데 분자가 분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난 것이다. 대출 증가 속도가 경제 성장 속도를 압도적으로 앞질러온 40년간의 역사다.

이를 역수로 계산해보면 더욱 충격적이다. GDP/민간대출 비율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대출이라는 인풋에 비해 실물 경제라는 아웃풋이 극단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부를 창출하기 위해 차입하는데 그것이 실물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전 세계 공통 현상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 한국 모두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현대 은행 제도를 채택한 모든 국가에서 실물 경제와 부채 규모의 괴리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조정이 온다. 2023년 미국의 지방은행 위기도 그런 조정의 한 단면이었다. 중앙은행이 개입해서 모든 채권을 시가가 아닌 액면가로 매입해주지 않았다면, 전체 은행 시스템이 붕괴할 뻔했다.

부채로 만든 세상에서 벗어나려면 이 구조적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금융의 역할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곳에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지, 자산 가격만 부풀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시스템에서는 자산 담보 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진정한 선별 기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신보성 박사가 말하는 “부채로 만든 세상”의 민낯이다. 17세기 런던 금장에서 시작된 작은 배신이 어떻게 현대 문명을 지배하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진화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이 끝없는 부채 증식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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