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8

목차

문명사의 핵심: 역사를 넘어선 미래 예측의 학문

표면적 진실과 심층적 진실: 역사와 문명사의 근본적 차이

세상에는 지식보다 정보가 100배, 천 배 많다. 거짓이거나 왜곡이거나 착각이거나 오해인 정보들 속에서 진짜 지식을 뽑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역사는 다르다. 실제 일어났던 일이니까 일단 진실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문명사를 역사의 한 부류라고 생각한다. 경제사, 기술사, 인물사, 정쟁사와 함께 역사 속의 한 영역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틀린 이해다. 문명사가 제일 큰 카테고리이고, 역사는 문명사를 설명하는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역사는 표면적 진실이다. 써 있는 것, 일어난 일들의 기록이다. 반면 문명사는 그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심층적인 원리를 알려주는 심층적 진실이다. 경제 이론상, 과학 기술적으로, 지정학적으로 그 역사가 왜 그렇게 일어났는지 원인을 설명해준다.

역사를 알면 과거는 설명이 잘 되지만 미래는 전혀 설명이 안 된다. 하지만 문명사를 알면 자연 법칙도 알고 인간 사회의 법칙도 알고 지구상의 지정학적 원리도 알게 되니까, 미래에 대한 예측력이 생긴다. 이것이 문명사의 핵심적 가치다.

자연법칙과 인간사회의 법칙: 문명사를 이루는 네 가지 기둥

문명사를 제대로 하려면 네 가지를 알아야 한다. 첫째, 대자연의 섭리다. 인간 사회가 포함된 대자연의 법칙, 즉 과학 기술을 알아야 한다. 자연은 만유인력 같은 물리 법칙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둘째, 인간 사회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인간 사회는 만유인력 같은 게 아니라 경제에 따라 움직인다. 돈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경제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셋째, 지정학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땅에 발을 붙이고 살기 때문이다. 지정학이 인간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주지 않는가? 석유가 발견되는 지역이 세계 경제를 좌우하고, 지금 트럼프가 각자도생의 시대로 세상을 끌고 갈 수 있는 것도 미국이 셰일 오일을 발견해서 중동 석유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넷째, 이 세 가지를 쉽게 설명하고 예를 들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 역사 속에는 이 모든 진실들이 구체적 사례로 나타나 있다. 그래서 공학(과학기술) → 경제학(인간사회 법칙) → 지정학(땅의 영향) → 역사(구체적 사례) 순으로 공부해야 문명사의 전체 그림이 보인다.

미래 예측력의 비밀: 원리를 알아야 내일이 보인다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은 70년대에 세계적 히트를 쳤다. 내용은 간단했다. 국가가 확장하면 국경이 길어지고 전선이 길어진다. 수도에서 병참 거리가 멀어진다. 전쟁으로부터 얻는 혜택보다 전쟁에 들어가는 비용이 커지면 제국이 망한다는 이론이었다.

로마 제국의 아우구스투스가 “북쪽으로는 라인강, 동쪽으로는 유프라테스강,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를 넘지 마라”고 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국이 확장하면 망한다는 것이다.

폴 케네디는 이 이론으로 “미국 곧 망한다”고 예언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이 망했나? 안 망했다. 폴 케네디의 예상이 완전히 틀렸다.

왜 틀렸을까? 농업 사회와 산업 사회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이기 때문이다. 농업 사회는 경제성장이 점점 줄어드는 감속하는 사회다. 하지만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경제성장이 가속하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왔다. 과거의 법칙으로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의 진실: 가속 성장과 초기 착각의 법칙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감속에서 가속으로의 대전환

농업 사회에서는 생산이 체감한다. 농부가 열심히 일해서 오늘부터 한 시간씩 더 일하면 연말에 쌀이 한 가마 더 나온다. 두 시간씩 더 일하면 한 가마 반이 나온다. 세 시간 더 일하면 한 가마 반하고 한 말밖에 안 나온다.

생산성이 늘어나긴 하는데 그 증가 속도가 점점 줄어든다. 이것을 한계생산 체감이라고 한다. 농업 사회는 이런 체감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산업 혁명이 딱 일어나고 나니까 생산이 체증하기 시작했다. 경제성장이 가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완전히 반대되는 새로운 세상이 온 것이다.

왜 그럴까? 규모의 경제 때문이다. 똑같은 물건을 열 개 만드는 것보다 100개를 만들면 훨씬 싼 값에 만들 수 있다. 운송도 마찬가지다. 조금 운송하는 것보다 대량 운송하면 운송비가 싸다. 여러 개 만들면 숙련도도 올라간다.

규모의 경제와 분업의 위력: 아담 스미스가 발견한 240배의 기적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소개한 핀 공장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아담 스미스가 핀 공장에 가보니 사람들이 핀을 만드는데, 철사를 끌고 와서 펴고 자르고 갈아서 꼬부려서 핀을 만들었다. 한 사람이 하루에 20개씩 만들었다.

그런데 이 작업을 18개 공정으로 나눴다. 힘센 사람은 철사 끌고 오기만 하고, 다른 사람은 자르기만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갈아서 뾰족하게 만들기만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꼬부리기만 했다.

18개 공정으로 나눴더니 하루에 4,800개씩 만들어졌다. 효율이 240배 올랐다. 이것이 아담 스미스 국부론의 핵심이다. 국가는 금을 많이 가져서 발전하는 게 아니라 분업에서 나오는 엄청난 효율 때문에 발전한다는 것이다.

분업의 효율, 규모의 경제, 기술의 경제 이런 것들 때문에 산업사회에서는 생산이 점점 체증하게 되어 있다. 옛날에는 땅을 조금 가진 농부가 알뜰하게 농사지어서 효율이 좋았지만, 요즘은 땅이 넓을수록 농업 효율이 올라간다. 기계로 완전히 다 뿌리고 드론이 돌아다니면서 약을 치니까 대규모 농사가 더 효율적이다.

혁명 초기의 착각: 왜 석학들이 산업혁명을 부정했나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경제성장이 가속한다는 것은 가속의 초기는 굉장히 느리다는 뜻이다. 뒤로 가면 엄청나게 빨라지지만 말이다.

가속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산업 혁명이 일어났는데 변화가 하나도 없는데, 그게 뭐가 혁명이야?”라고 생각했다. 초반에는 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영국 경제사의 대가들인 클래펌, 크래프트 같은 석학들이 “산업 혁명은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것이기 때문에 산업 혁명이 아니다”라고 했다. 크래프트는 “산업혁명은 실질 생산성 증가에 기여한 바가 낮기 때문에 혁명적이 아니다”라고 산업 혁명을 부정했다.

지금도 경제학 교수나 역사 교수들에게 산업 혁명이 있었냐 없었냐 물으면 없었다고 답하는 사람이 반 이상이다. 특별한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공장이 천 개 있으면 한 회사에서 기계화했다. 그러면 옆 회사에서 성공하나 안 하나 지켜본다. 성공하면 따라 하려 하고, 한 회사에서 불이 나면 “야, 기계화하지 마, 그거 나쁜 거야”라고 해서 아무도 안 한다. 그러다가 또 세월이 흐르고 조금 잘하면 또 조금 따라 한다.

확산되어서 전체가 기계화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처음에는 한 개, 두 개 기계화되니까 평균으로 따지면 성장이 굉장히 낮다. 뒤에 열 개, 백 개씩 따라 하게 되면 확 올라가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현재: 초기 단계에서 폭발적 변화로

4차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MIT의 로버트 솔로우 교수가 “컴퓨터 혁명의 역설”이라고 해서 “어디를 봐도 컴퓨터 시대는 왔는데 생산성은 올라가지 않네”라고 했다. 혁명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틴 베일리 같은 경제학계의 거물도 “정보기술, 로봇, 인공지능 등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기술 혁명은 역사적 선례에 비해서 과대 포장되어 있다”고 했다. 장하준 교수도 “인터넷이나 컴퓨터보다 옛날에 세탁기하고 냉장고가 훨씬 더 삶을 바꿨다”고 했다.

그때가 4차 산업혁명 초기라 변화가 안 보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챗GPT가 나왔다. 이건 혁명 아닌가? 휴머노이드 로봇이 나와서 가사를 다 도와준다고 한다. 자율자동차도 나온다.

그분들이 4차 산업혁명도 초창기에는 변화 속도가 늦다가 뒤에 가서 왕창 빨라진다는 사실을 모르신 것이다. 정말 대단한 석학이고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노벨상도 받았지만, 산업사회의 경제성장이 가속한다는 건 공부해보신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영국과 미국: 반칙으로 일궈낸 산업혁명의 실상

영국의 전략적 보호무역: 면직물 착용 금지라는 극단적 선택

영국은 비가 많이 와서 풀이 잘 자라고, 풀이 잘 자라니까 양을 키우기 좋았다. 그래서 양을 많이 키워서 양털을 유럽에 수출했다. 그러면 프랑스 북쪽, 네덜란드, 벨기에의 플랑다스 지방에서 모직물을 만들어서 영국에 수출했다.

영국은 양모 수출하고 모직물 수입하는 구조였다. 이익은 가공업체가 가져가고 영국은 원료만 제공하는 셈이었다. 영국의 기업가들이 모여서 “우리가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거 어떡하냐?”고 고민했다.

그래서 양모 수출 금지법을 만들었다. “양모 수출하지 마라! 실을 뽑든 천을 짜든 부가가치를 올려서 비싸게 수출해라!” 양모 수출 금지법을 만드니까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양모가 없으면 못 만들지 않나? 할 수 없이 실 짓는 법을 넘겨줬다.

반제품을 만들어서 수출했는데, 반제품 만드는 데 부가가치가 2030%이고 완제품에 7080%가 들어가니까 다시 반제품 수출 금지법을 또 만들었다. 완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수출도 못 하게 한 것이다.

이는 완전히 경제외적인 독재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때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갖고 있었는데 인도에서 면직물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문익점 이전에 우리나라에 목화가 없었던 것처럼, 그전에는 면직물이 없었다.

모직물은 거칠고 마 같은 것은 속옷으로 입기 나쁜데, 면직물이 보들보들하게 들어오니까 속옷으로 너무 좋고 염색이 잘 되고 빨래도 잘 되고 가공도 잘 되어서 여자들이 열광했다. 캘커타에서 수출하는 면직물을 캘리코라 불렀는데, 캘리코 열풍이 일어났다.

면직물이 쫙 들어오니까 영국의 모직물 산업이 망하기 시작했다. 누가 모직물을 사나? 다 면직물이지. 영국에서 생각하니 “우리가 옛날에 수출 금지해서 성공했잖아. 좋아, 면직물 수입 금지!”

1720년에 면직물 수입 금지를 때렸다. 그런데 이제는 안 됐다. 밀수가 돼서 들어오는데 막을 방법이 없었다. 여성들이 그렇게 좋아하는데 그게 막아지겠나?

그래서 1721년에 영국에서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법을 만들었다. 면직물 착용 금지법이다. 우리나라가 일제 텔레비전 수입 금지는 했지만 텔레비전 시청 금지는 안 했다. 미제 자동차 수입 금지는 했지만 미제 자동차 탑승 금지는 안 했다. 그런데 영국은 탑승 금지, 시청 금지까지 다 한 것이다.

면직물 옷이 있어도 못 입게 한 것이다. 그 당시 기록에 의하면 현장에서 옷을 찢어서 잡아가서 가뒀다고 한다. 영국 사람들이 정말 독한 민족이었다.

그렇게 하니까 영국 내에서 면직물 수입이 금지되고 모직물 산업이 살아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영국 내에서 새로 기계로 짜는 면직물 공업이 생겨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긴 원하니까. 인도의 손으로 짜는 수직 면직물 산업은 영국이 수입을 금지해버리니까 쇠퇴하고, 국내에서 새로운 면직물 산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게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과 딱 맞아 들어간 것이다.

제임스 와트와 매튜 볼튼: 의회를 움직인 특허권 연장의 기적

증기기관 기술은 원래 프랑스 사람 드니 파핀이라는 사람이 개발했다. 압력솥 같은 걸로 개발한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까 영국의 기술 경진대회에 출품했다.

뉴커먼이라는 사람이 그것을 개선해서 뉴커먼 기관을 만들고, 제임스 와트가 그것을 개량해서 현대적인 증기기관의 원조를 만들어냈다.

제임스 와트는 원래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손재주가 좋은 맥가이버 같은 사람이라서 글래스고 대학의 영선공, 시설 보수하는 일을 했다. 거기 뉴커먼 기관 모형이 있으니까 그걸 뜯어 고치고 하다가 “이렇게 고치면 석탄 조금만 때도 힘이 많이 난다”고 떠벌렸다.

같이 술 마시던 로벅이라는 사람이 “내가 푼돈 모아놓은 게 있는데 우리 같이 사업할래?”라고 해서 같이 사업을 시작했다. 증기기관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요즘도 벤처 기업의 성공 확률이 1%라고 하지 않나? 시작하면 대부분 망한다고.

그때도 그랬다. 완전히 망했다. 기업경영 역량도 없고 해서 일설에 의하면 야반도주를 하려다가 빚쟁이들한테 멱살 잡혀서 왔다는 얘기도 있고, 우울증에 걸려서 자살을 생각했다는 설도 있다.

**매튜 볼튼이라는 사업가가 딱 보니까 “저 증기기관은 성공하면 대박이 아니라 세상을 바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매튜 볼튼이 제임스 와트를 불러서 “우리 같이 합자회사를 차리자”고 했다. 제임스 와트는 구세주를 만난 것이었다. 그때 제임스 와트 부인이 작고를 해서 중년, 무전, 중년 상처까지 겹친 인생 지옥이었는데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

매튜 볼튼과 와트가 볼튼 와트 회사를 만들어서 사업을 하겠다고 했는데, 매튜 볼튼이 자기 밑 사람들을 보내서 회사를 실사했다. “이건 회사가 엉망이야. 완전히 장부도 제대로 없고 비즈니스도…” 그건 상관없었다. 돈은 투자하면 되니까.

근데 그때 특허 만료 기간이 14년이었다. 특허는 이미 냈는데 6년이 지났다. 이제 8년 정도밖에 안 남은 것이다. “내가 돈을 왕창 집어넣는데 5~6년 걸릴 텐데, 이거 다 만들어놓고 나면 특허가 끝나버린다.”

요즘 반도체 웨이퍼는 우리가 복사 못 만들지 않나? 엄청난 시설이 있어야 되는데, 그 당시의 특허는 망치로 두드리면 만들 수 있는 특허였다. 따라서 따라 하지 말라고 엄격하게 보호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이 사업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다가, 볼튼과 와트가 대영제국 의회에 청원을 했다. “이게 너무너무 중요한 기술이니까 특허 기간을 연장해달라.”

그게 말이 되나? 특허법에는 14년으로 정해져 있는데. 대한민국 국회에서 그런 걸 연장해주는 일은 있을 수가 없고, 연장하면 청문회 해야 한다.

그런데 치열한 토론 끝에 근소한 표차로 20년 연장을 결의했다. 추가로 20년, 총 29년인가 31년인가를 특허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업이 시작되었다. 그 바람에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완성체로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엄청난 돈을 넣어서 그걸 해서 영국이 산업혁명에 완전히 성공한 것이다.

매튜 볼튼이 의회를 설득하고, 제임스 와트가 집요하게 증기기관을 만들어가고, 또 그것을 보호해서 키워줄 수 있는 의회의 입법하는 사람들, 이런 것들이 삼위일체로 딱 맞아서 영국의 산업혁명을 만들어낸 것이다. 영국이 운이 좋아서 뻥 산업혁명이 터져나온 게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링컨의 50% 관세와 남북전쟁: 60만 목숨을 댄 산업화의 대가

미국도 영국 사람들이 영악해서 식민지에서 제조업과 제철업을 못 하게 딱 막았다. 언젠가는 우리한테 도전할지 모르니까. 식민지는 원료만 생산해서 본국에 보내고 완제품을 사다 쓰라는 것이었다.

미국이 독립은 했는데 영국의 경제 식민지였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고급 제품인 면제품이 다 수입되었다. 미국은 완전히 경제 식민지가 되어서 미국의 기술은 발달하지 않았다.

남부의 농장주들이 노예들을 데려다가 채찍으로 때려가면서 목화를 생산해서 유럽으로 보냈다. 그러면 그게 비싼 제품이 되어서 미국으로 다시 들어왔다. 이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요즘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사랑하는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관세를 더 사랑하는 대통령이 누구였냐면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이었다.

링컨 때 모릴 관세법으로 관세율을 거의 50%까지 올려버렸다. 그러면 유럽에서 들어오는 제품에 관세를 딱 먹이면 유럽 국가들이 바보가 아니지 않나? 대응 조치를 취한다. 미국에서 들어오는 상품에 관세를 붙인다. 미국에서 들어가는 상품이 목화다.

그럼 남부의 농장주들은 목화에 세금이 왕창 때려지니까 목화가 안 팔려서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었다. 북부의 공장주들은 유럽에서 들어오는 상품값이 비싸지니까 국내에서 만든 조악한 제품이 팔려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북부의 공장주들은 때돈을 벌고 남부의 농장주들은 완전히 손해를 뒤집어쓴 것이다. 그래서 남부 주들이 연합해서 연방에서 탈퇴한다고 했다. 그래서 남북전쟁이 딱 시작된 것이다.

남부가 먼저 탈퇴해서 남북전쟁을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노예 해방 때문이 아니고 관세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는 아주 아름다운 단어야, 나는 관세를 사랑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미국이 관세로 성공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남군과 북군이 싸우는데, 그 당시에는 총이 나빠서 조준 사격이 안 됐다. 조준해서 쏘면 안 맞았다. 그래서 어떻게 사격했냐면, 일렬로 쫙 서서 총을 딱 들고 전부 90도 앞을 향해서 쏘면서 행진을 했다. 그게 그 당시 전쟁 방법이었다.

전열보병 체제라고 해서 1열로 딱 서서 옆에서 북을 탕탕탕 치면 북소리에 맞춰서 착착착 한 걸음씩 하면서 총을 쏘는 것이었다. 적군도 그렇게 오고 아군도 그렇게 간다. 넓은 광야에서 양 군대가 서서 총을 쏘면서 앞으로 걸어가면, 가까이 올수록 픽픽 쓰러진다. 쓰러지면 뒤 열에서 빨리 그 자리를 채워서 또 쏘는 것이다.

사상자가 무지하게 많았다. 페니실린 같은 약이 없으니까 좀 다치면 염증이 생기고 해서 막 죽었다. 남북전쟁을 통해서 18살부터 40살까지의 미국의 젊은 남자만 60만 명이 죽었다. 죽은 사람만 60만 명이다.

남북전쟁 때 죽은 사람이 어떤 학자들은 전후 미국이 했던 모든 전쟁에서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이 죽었다고 얘기할 정도다. 세계대전을 합쳐서도.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남북전쟁을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량 살상 전쟁이라고 쓴 사람도 있다.

그때 미국 인구가 3천만이 조금 넘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5천만인데 3천만에서 60만이 죽었다면 얼마나 많이 죽은 건지 알 수 있다. 미국이 그 많은 정말 꽃 같은 젊은 청년의 목숨을 대가로 얻은 게 미국의 산업혁명이다.

패권국의 사다리 걷어차기: 성공 후 자유무역을 외치는 이유

과거의 약육강식 시대에는 로마 제국, 몽골 제국 같은 나라가 옆 나라를 점령했다. 영토를 다 뺏고 노예로 삼았다. 왜 그랬을까? 모든 가치가 땅에서 창출되니까 남의 땅을 뺏어야 생산을 늘릴 수 있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뺏는 나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인구는 늘어나는데 먹을 건 없으니까.

그런데 산업 사회가 되니까 안 뺏어도 우리나라에서 생산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생산하는데 필요한 생산 요소, 원료, 소재, 부품, 장비, 기술, 노동 이런 것만 확보하면 생산을 우리 안에서도 얼마든지 100배, 천 배, 만 배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남의 나라를 꼭 뺏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나 내가 필요한 원료는 가져와야 한다. 지금 트럼프가 희토류를 그린란드, 우크라이나에서 가져오라고 하는 것처럼.

패권국은 남의 나라를 뺏지 않고, 강압과 회유를 통해서 자기가 필요한 다른 나라의 자발적인 동의를 거쳐서 패권국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차이가 뭐냐면, 나라를 뺏고 점령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른 나라를 어떻게든지 회유하든지 압박해서 채찍과 당근, 캐롯과 스틱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채찍이 뭐냐면 경제력 채찍, 군사력 채찍이다. 당근이 뭐냐면 사상 매력이다. 이걸 소프트 파워라고 한다.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동원해서 다른 나라가 패권국의 의도에 맞춰서 무역을 할 수 있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상대방 국가의 자발적 동의를 거친다는 것이다. 지금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윽박지르고는 있지만 젤렌스키의 동의를 구해서 하는 것이다. 옛날 같으면 그냥 쳐들어가서 뺏어버렸겠지만.

그런데 영국이 천재적인 것이 이런 외생적 성장, 변칙적인 방법을 써서 네덜란드를 억누르고 성공한 다음에 뭐라고 했을까? 세계에서 제일 강국이 딱 되고 나서 “반칙하면 안 돼,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했다. 자유무역하고 공정하게 하라고.

선진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제일 먼저 만들어낸 외생적 성장, 반칙도 영국의 발명품이고, 올라가서 걷어차는 것도 영국의 발명품이다. 그것을 그대로 따라한 미국이 성공한 것도 발명품이고, 걷어찬 것도 지금 또 그렇게 걷어차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

산업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반드시 만들어내야 하는 이유

산업혁명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산업혁명은 일으켜야 된다. 일으키면 일어나고 안 일으키면 절대로 안 일어난다.

증기기관 기술도 원래 프랑스 사람 드니 파핀이 개발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까 영국의 기술 경진대회에 출품했다. 뉴커먼이 그걸 개선해서 뉴커먼 기관을 만들고 제임스 와트가 그것을 개량해서 현대적인 증기기관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기술 개발한다는 게 힘들지 않나? 그런데 새로운 기술 개발한다는 게 실험실에서 연구해서 하는 게 아니라 기술은 현장의 것이다. 기업을 만들어서 기업이 해야 되는 것이다.

제임스 와트가 원래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은 아니었다. 손재주가 좋은 맥가이버 같은 사람이라서 글래스고 대학의 영선공을 했다. 시설 보수하는 사람이었다. 거기 뉴커먼 기관 모형이 있으니까 그걸 뜯어 고치고 하다가 “이렇게 고치면 석탄 조금만 때도 힘이 많이 난다”고 떠벌렸다.

같이 술 마시던 로벅이라는 사람이 “내가 푼돈 모아놓은게 있는데 우리 같이 사업할래?”라고 해서 같이 사업을 시작했다. 증기기관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요즘도 벤처 기업의 성공 확률이 1%라고 하지 않나? 시작하면 대부분 망한다고.

그때도 그랬다. 완전 망했다. 기업경영 역량도 없고 해서. 매튜 볼튼이라는 사업가가 딱 보니까 “저 증기기관은 성공하면 대박이 아니라 세상을 바꿀 것 같다”고 생각해서 제임스 와트와 손을 잡았다.

매튜 볼튼이 의회를 설득하고, 제임스 와트가 집요하게 증기기관을 만들어가고, 또 그것을 보호해서 키워줄 수 있는 의회의 입법하는 사람들, 이런 것들이 삼위일체로 딱 맞아서 영국의 산업혁명을 만들어낸 것이다.

4차 산업혁명도 우리가 지금 만들어내면 일어나는 거고, 우리가 안 만들어내면 안 일어나는 것이다. 지구상에 만들어내지 않은 산업혁명은 없다.

한국의 선택과 집중: 카니발의 9인승 전략이 주는 교훈

우리나라도 치사한 짓을 많이 한다. 고속도로 버스 전용차선에 승합차 중에 9인승 이상만 다니게 하는데, 맨날 카니발만 다닌다.

카니발과 거의 유사한 수입 자동차들도 있다. 똑같다. 근데 안 된다. 그건 7인승이야. 카니발을 봤더니 운전석 사이에 진짜 조그만 의자 하나가 있다. 그거는 그냥 의자라고 우긴다. 트렁크 뒤에 열어봤더니 의자 두 개가 있긴 있다. 완전 그냥 카니발 법이다.

우리는 카니발이 1년에 거의 만 대 가까이 나오니까 그렇게 의자 달고 할 수 있는데, 다른 나라 회사들은 “한국에 몇 대 팔려고 여기다 의자를 끼워? 그럼 차라리 포기해”라고 하니까 거기는 안 만든다. 그럼 카니발 사면 버스 전용차선 탈 수 있다고 하니까 카니발 열풍이다.

이런 반칙을 한다고 창피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불편한 진실이고 현실일 수도 있다. 우리는 거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좀 바꿀 필요도 있다.

영국의 천재성이 그렇게 외생적 성장이라는 변칙적인 방법을 써서 네덜란드를 억누르고 성공한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 강국이 딱 되고 나서 “반칙하면 안 돼,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했다. 자유무역하고 공정하게 하라고.

공정과 발전의 딜레마: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용기

영국의 의회가 특허권을 연장해준 것도 결과적으로는 제임스 와트를 성공시켜서 산업혁명의 씨앗이 되어서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되게 했지만, 그 당시에 그걸 보면 공정하지 않은 결과였다.

미국의 남북전쟁도 남군의 주장이 옳았다. “너네가 혜택은 너네 북부의 제조업자가 받고, 왜 피해는 우리 남부의 농민들이 받아야 되냐? 그럼 너희들이 우리를 보상하든가, 아니면 이 관세를 없애자”라고 하는 게 얼마나 옳은 얘기인가.

그거를 다 무시하고 “안 돼, 해”라고 하는 것이 산업 정책이고, 그게 경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면 이게 참 딜레마다.

국가가 발전하려면 자유무역을 해야 된다. 시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서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조절에 의해서 교환이 일어나고 이윤이 확보된다. 이윤이 확보되면 그게 자본으로 누적되고, 자본으로 누적되면 또 투자가 일어나고, 투자가 더 커지면 더 큰 이윤이 생기고, 이렇게 확대재생산이 일어난다.

비용은 계속 낮아지고, 이윤은 점점 쌓이고, 이게 국가 발전이다. 이걸 내생적 성장이라고 부른다. 경제 내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시장에서 만나서 경제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내생적 성장을 해서 성공한 것이다.

근데 세상이 평평하지 않다. 높은 데도 있고 낮은 데도 있어서 선진국 말고 후진국이 있는 것이다. 선진국은 좋은데 계속 후진국은 선진국을 따라가려 하면 어렵다.

돈 많은 부자가 10억 원을 갖고 있고 가난한 사람이 1억 원을 갖고 있다고 하자. 빈부 격차는 9억 원이다. 둘이 노력해서 두 배씩 만들었다. 그럼 2억 원과 20억 원이 되면 빈부 격차가 18억 원으로 두 배로 늘어난다.

그러니까 새로운 방법을 써야 한다. 경제외적인 공권력을 동원해서 선진국과 격차를 좁혀나가는 것이다.

이 국가 발전 원리에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이런 정책을 도입할 때마다 가장 큰 도전이 이거일 것이다.

지금도 삼성전자 같은 회사에 지원금을 주자고 하니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자인 회사를 국민 돈으로 도와주자고 왜 해야 되냐?”는 반발이 있다.

하지만 결국은 생산을 혁신하는 기술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진짜 행복이다. 부가 있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성공해서 선진국이 된 원리는 한 가지다. 다른 게 없었다. 똑같다.

영국이 했던 방법을 그대로 배워서 한 게 미국이고, 그 방법을 독일과 일본이 배워서 했고, 우리 한국이 따라했고, 그다음에 중국이 우리를 따라 해서 지금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우리도 의지를 갖고 성공시킬 방법을 찾으면 4차 산업혁명에 성공시킬 수 있다. 조금 늦었긴 하지만 더 늦으면 안 된다.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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